여행하다/2010 Gyeongju

경주 무열왕릉, 오릉, 포석정 2010.05.08

siastar 2010. 5. 10. 13:05


* 신라무열왕릉 [武烈王陵] 
 
경북 경주시 서악동(西岳洞)에 있는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능. 
소재지  경북 경주시 서악동(西岳洞) 842  
시대  신라
사적 제20호. 지정면적 1만 4165m2.

능의 외형은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밑지름 36.3 m, 높이 8.7m이다.
밑둘레를 따라 비교적 큰 자연석을 사용하여
무덤의 보호석으로 드문드문 놓았으며,
능 앞에는 혼유석(魂遊石)이 있다.
경내 비각에는 국보 제25호로 지정된,
비신(碑身) 없는 태종무열왕릉비(太宗武烈王陵碑)의
몸통을 받쳤던 귀부(龜趺)와 위를 장식하였던 이수(螭首)가 있다.
이 이수의 전면 중앙부에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 새겨져 있어,
이 무덤이 무열왕의 능임을 알게 되었다.


* 신라오릉 [新羅五陵] 

경북 경주시 탑동(塔洞)에 있는 능묘(陵墓).  
소재지  경북 경주시 탑동 67  
시대  신라시대 
사적 제172호. 봉분 높이 10m 내외, 지름 20m 내외이다.

신라 초기의 왕릉으로 시조(始祖) 박혁거세(朴赫居世)와 알영부인(閼英夫人),
제2대 남해왕(南解王), 제3대 유리왕(儒理王), 제5대 파사왕(婆娑王)등
5명의 분묘라 전해진다. 일명 사릉(蛇陵)이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명칭은 박혁거세가 승하 후 7일 만에 그 유체(遺體)가
다섯 개로 되어 땅에 떨어졌으므로
이를 합장하려 하자 큰 뱀이 나와 방해하므로
그대로 다섯 군데에다 매장하였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연유되었다.
능 입구의 홍살문을 세운 기둥은 원래 당간지주(幢竿支柱)로
이곳에 담엄사(曇嚴寺)가 있었다는 설과 일치한다.

* 경주포석정지 [鮑石亭址]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에 있는 신라의 석구(石構).
소재지  경북 경주시 배동 454-3  
시대  통일신라시대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호로 지정되었다.
면적 7,432㎡이다. 경주 남산 서쪽 기슭에 있다.
역대 왕들이 전복 모양으로 생긴 유상곡수(流觴曲水)에
술잔을 띄워 놓고 시를 읊으며 연회를 하던 장소로 여겨졌다.
그러나 《화랑세기》 필사본에서 포석정을 포석사(鮑石社)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1998년에 이곳에서 남쪽으로 50m 떨어진 곳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면서
이곳에 규모가 큰 건물이 있었음이 알려지고, 제사에 사용되었을 제기류도
출토되어 포석정이 사당이었을 가능성도 제시되었다.

원래 뒷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토하는 돌거북이 있었다 하나 없어졌고,
 이 물을 받는 원형 석조(石槽)가 있어,
이곳에서 구불구불한 모양의 곡석(曲石)이
타원 모양으로 되돌아오게 되는데,
배수구의 마무리가 분명하지 않다.

일제강점기에 임의로 보수하여
수로곡석(水路曲石)의 원형이 많이 파손되었다.
이러한 석구는 중국 동진(東晉) 시대부터 있었다
하나 대개 자연의 산수(山水)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데 비하여, 완전히 인공적인 점이 그 특색이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